쑥부쟁이 - 1부12장

야설

쑥부쟁이 - 1부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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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전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장장이는 열심히 대장간 일을 했지만 늘 생활이 어려웠지요.




왜냐하면 대장장이에게는 올망졸망 귀여운 일곱 명의 아들딸이 있었기 때문이죠.




불행하게도 대장장이의 아내는 막둥이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어요.




대장장이의 큰 딸은 18 살의 꽃다운 나이였어요.




마음씨가 착한 대장장이의 큰 딸은 늘 배고픈 동생들의 끼니를 위해 산에 올라가 쑥을 캐러 다녔어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녀을 ‘쑥을 뜯으러 다니는 대장장이네 딸’이리고 해서 ‘쑥부쟁이’라고 불렀어요.




어느 날, 쑥부쟁이는 쑥을 캐려 산에 갔어요.




그런데 함정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 총각을 발견하곤 구해주었지요.




그 총각은 한양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산을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그만 길을 잃고 산 속을 헤매다가 사냥꾼이 짐승을 잡기 위해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거였어요.




총각은 함정에 빠져 그만 다리를 다쳐서 어쩔 줄 몰라 ‘사람살려’ 하는 소리만 지르고 있었지요.




다행히 쑥부쟁이가 그 소리를 듣고 총각을 구해주었답니다.




쑥부쟁이는 총각을 자기 집에 데려갔고 총각은 며칠 동안 쑥부쟁이의 집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쑥부쟁이의 지극한 간호 덕분에 총각은 다리를 치료할 수 있었어요. 




두 사람은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뜬 가슴이 뜨거울 나이였어요.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쑥부쟁이는 한 밤중에 몰래 나와 동네 우물가에 갔답니다.




거기서 쑥부쟁이는 접시에 맑은 물을 담아서 신령님께 기도를 드렸어요. 




다름 아니라 총각의 다리가 다 낫게 되어 무사히 한양에 가서 과거시험에 합격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지요.




한밤중 오줌이 마려워 집 밖에 나왔던 총각은 쑥부쟁이의 뒤를 몰래 따라왔지요.




총각은 우물 옆 버드나무 뒤에 숨어서 쑥부쟁이가 기도를 드리는 모습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만 참지 못하고 버드나무 뒤에서 뛰쳐나와 쑥부쟁이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총각은 쑥부쟁이에게 자신이 과거에 합격해서 돌아오기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총각에게 은근한 마음을 품고 있던 쑥부쟁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두 사람은 그날 밤, 달님과 별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한 몸이 되었답니다. 




새벽이 되자 총각은 한양으로 길을 떠났어요.




쑥부쟁이는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던 그 우물에서 매일 우물물을 길어다가 신령님께 기도를 드리며 기다렸어요.




하루... 이틀... 일 주일... 그리고 한 달.




쑥부쟁이의 애타는 기다림과 달리 여섯 달이 지나도록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쑥부쟁이의 배는 날마다 불러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겉으로 보기에도 제법 불쑥 튀어나왔지 뭐에요.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수군 대기 시작했어요.




쑥부쟁이는... 그만 총각의 아이를 임신하고 만 것이었어요. 




동네에 일을 하러 갔다가 동네사람들의 뒷담화를 들은 대장장이는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는 쑥부쟁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자초지정을 물었어요.




쑥부쟁이는 잔뜩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씀드렸어요.




그리고는 울면서 집을 나가고 말았어요.




쑥부쟁이는 산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서 총각과 처음 만나 곳에 이르렀어요.




거기서 총각을 생각하며 서럽게 울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너무나 원망스러운 총각인데 울면 울 수록 총각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가지 뭐에요.




쑥부쟁이는 몸을 일으켜서 산 아래가 머얼리 보이는 곳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한양이 보이는 쪽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만 그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어요. 




그렇게 쑥부쟁이가 죽은 그 자리에는 작은 꽃이 피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이 총각을 그리워하다 죽은 쑥부쟁이와 닮았다고 해서 쑥부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답니다. 










<상화여고 연극반 정기공연 회의 중>




A : “어휴 재수 없어. 도대체 왜 우리나라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바보 멍청이 같은 거야?




B : “왜 이렇게 민감하실까? 그냥 옛날이야긴데 뭘 그래?




A : “어머머... 넌 같은 여자로서 자존심 상하지도 않니? 이런 것도 작품이라고 책에 나와 있다니 말야.”




C : “뭐... 좀 시시하긴 해. 그런데 그래도 좀 로맨틱한 점은 마음에 들어.”




A : “뭐? 로맨틱! 야, 로맨스가 다 얼어 죽었냐? 그리고 여자 주인공은 왜 임신만 하면 자살하는 거야. 바보같이.”




B: “그거야. 그 시대에는 낙태 수술이 없어서 그랬던 거 아냐?”




A : “무식하긴 이년아... 너도 덜컥 임신하면 자살할 거다. 옛날부터 낙태 방법은 많았어. 양잿물을 마신다던가 하는...”




D : “아! 혹시 쑥부쟁이가 언덕에서 떨어진 건 애 떨어뜨리려고 그런 거 아닐까? 그런데 잘못해서 저도 죽어버린 거야.”




C : “야... 역대급 바보같은 소리다. 그런데 묘하게 설득력 있어 크크크.”




B : “그런데 이 이야기로 연극을 짜기에는 조금 짧지 않을까? 요즘 관객들은 긴 이야기를 좋아하던데.”




A : “길게 각색하고 싶어도 ‘작가’ 역량이 후달리는 걸 어떻게 하겠냐?”




B : “그래도 매번 기대하고 보는데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리면 관객들도 허무하잖아.”




C : “그건 그래. 그래도 애써서 길게 쓰려면 너무 머리가 아파.”




A : “에이... 우리 그냥 그만 둘까? 바탕이 되는 이야기도 너무 허접하고 우리가 이때까지 각색한 내용도 너무 허접하고...”




B : “에이... 그래도 그건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어떻게든 힘내서 열심히 써 보자.”




C : “그런데 이 이야기에 나오는 총각 말이야... 어떻게 하지? 전설에는 그냥 이름 없는 총각으로 나오잖아. 캐릭터를 부여해야 하는데.”




D : “딱 보면 나오네... 쉽게 사랑에 빠지지만 하룻밤을 보내고 났더니 마음이 달라져버린 남자.”




B : “총각은 왜 쑥부쟁이를 버린 걸까? 정말 마음이 변한 걸까?” 




A : “총각은 과거에 합격한 거야. 요즘으로 치면 사시합격, 혹은 의사고시 합격한 거지. 그러니 주변에서 가만히 있겠어? 여기저기서 서로 물어 가려고 야단이었겠지.”




C : “집안 좋고 쑥부쟁이 같은 촌년보다 훨씬 세련된 한양 여자를 보니 눈이 돌아간 거지.”




B : “야, 니들... 무섭다... 너무 현실적이야. 순수한 소녀는 그대들이 너무 무섭사옵니다.”




D : “순수한 소녀여, 그대의 큰 가슴에 한 번 안기고 싶소.”




B : “어머나, 아니되옵니다. 소녀 부끄럽사옵니다.”




C : “근데, 총각은 잘 생겼을까?”




A : “뭐, 순진한 시골 소녀가 보기에 가슴이 설렐 만큼 제법 괜찮게 생기지 않았을까? 글공부를 했다니 약간 기생오라비 스타일일지도 모르지.”




C : “내 생각에는 총각도 처음에는 순진했을 거야. 과거에 합격하고 다시 처녀에게 몰래 찾아왔는데 글쎄... 처녀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겁이 났던 거야.”




A : “왜?”




C : “음... 왜 순진한 남자들은 그런 거 있잖아. 사랑에 눈이 먼 처음에는 눈앞에 사랑스러운 여자만 보였던 거지. 그런데 점점 사랑이 식으면...”




B : “콩깍지가 벗겨진 거란 말이지?”




C : “그렇지,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점점 현실이 드러나는 거야. 그럼 남자들은 덜컥 겁이 난다고 해.”




D : “누가 그래?”




C : “... 글쎄... 아무튼 어디 책에서 읽었어. 남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과감하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것도 실은 그 안에 숨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서래.”




A : “아, 알겠다. 그래서 실은 남자는 여자보다 철이 늦게 들고, 또 나이가 들면 힘도 없어지면서 아내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하더라고.”




D : “난 좀 부드러운 남자가 좋던데. 그러니까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남자 말이야.”




C : “아무튼 총각도 쑥부쟁이가 임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무서웠던 거야. 자기가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 자신이 책임 질 수 없을 만큼 커 진 거지.




A : “아니, 그냥 책임지고 결혼하면 되는 되잖아.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B : “그럼 이건 어때? 쑥부쟁이와 아기를 책임지게 되면 다른 걸 포기해야만 하는 거야. 이를테면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부모의 허락도 없이 한 여자의 몸을 더럽힌 거야. 게다가 임신까지 시킨 거지.”




C :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공직자로서 도덕적 결함이 문제가 된다는 거지?”




B : “그렇지.”




A : “어휴, 어쨌든 그런 남자도 재수 없어. 자기가 저지른 일에 책임도지지 못하는 남자 따위는 질색이야.”




D :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하는 거야. 누구처럼 아무 데나 몸을 함부로 굴려서도 안 되고.”




A : “너 꼭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평생 연애도 한 번 못해본 주제에.”




D : “뭐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난 쑥부쟁이한테 한 말이야. 네 못생긴 남친 한테는 관심도 없거든.”




C : “너네는 맨날 싸우냐? 그만 해라.”




A : “근데 남자주인공인 총각이 참 능력이 좋은 것 같지 않아?”




B : “그럼... 그 시대에 과거를 보러 간다는 건 적어도 양반 집 자식이란 말이잖아.”




A :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룻밤 인연만으로 임신을 시키다니 대단하지 않아?”




C : “오, 듣고 보니 그런데?”




D : “그게 꼭 남자 능력이라고 볼 수 있어? 씨를 아무리 뿌려도 밭이 좋아야 한다고, 쑥부쟁이가 좋은 여자인 거지.”




C : “너 꼭 우리 할머니처럼 이야기 한다. 근데 그렇게 설정하지 않으면 이야기 진행이 안 되잖아. 어쩔 수 없이 아침 드라마 같은 전개를 할 수 밖에.”




B : “음모론을 더하는 거야. 그러니까 총각의 약점을 잡은 누군가가 있는 거지.”




C : “에이, 그건 너무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그냥 원작대로 하자.




A : “그래, 난 여주인공도 맘에 안 들지만 우유부단하기 그지없는 남자 주인공도 싫어. 보나마다 약점을 잡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이야기겠지.”




D : “아니야. 난 재밌겠는데. 다만 우리가 이야기를 풀어낼 재주가 있을지가 걱정이다.




B : “그래, 나도 그게 걱정이야.”




E : “애들아... 내가 한 마디 해도 될까?”




A : “응, 너도 있었니? 아무 말이 없길래 죽었나 싶었지.”




E :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우리 연극할 때 총각이랑 쑥부쟁이랑 왜 그거...”




B : “그게 뭔데? ... 아 우물 근처에서 섹... 섹...스 하는 그 장면?”




E : “응... 그 장면 학교에서 허락해 줄까? 쑥부쟁이는 요즘으로 치면 거 뭐냐... 미성년자잖아.”




C : “야, 너도 참 답답하다. 그 정도 표현의 자유도 허락 못한단 말야. 그냥 대충 페이드 아웃하고 나레이션으로 처리하면 되지.”




E : “나도 엉뚱한 생각이란 걸 알아. 그런데 지난 번 공연 때도 몇몇 애들의 반응이 안 좋았잖아. 그것 때문에 학교 운영위원횐가 거기에다 건의도 하고 해서 우리가 고생을 했잖아.”




D : “그거야, 그년들이 또라이 같은 년들이라 그렇지. 안 그래도 나도 걔네들 때문에 얼마나 열 받았는데. 메주 같이 생긴 것들을 아주 갈아 버려야 할 텐데 말야.




A : “메주를 갈면 된장이 되는 거 아냐? 왜 우리가 된장 같은 년들 때문에 공연을 고민해야 하는 거야. 어이가 없네 참.”




E : “내 말은... 어쨌든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냐 하는 거지.”




A : “야,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무슨 예술을 하겠냐? 겁나면 넌 이번 공연에 빠져.”




B : “나도 시나리오를 담당한 사람으로서 동의해. 우리가 각색한 내용으로 안 할 거면 아예 공연을 하지 않을 거야.”




C : “그럼 우리 부서 담당선생님한테 가서 우선 물어보자. 이 내용으로 해도 괜찮을지 말야.”




D : “그런데 우리 담당선생님이 누구시지?”




A : “야, 넌 그것도 모르냐? 강현태 선생님이잖아. 생물”




D : “어휴, 그 선생님이 언제 우리한테 관심을 가져 준 적이 있어야지. 얼굴 한 번 안 보인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아냐?”




B : “그럼 우리 한 번 가서 물어보자.”




일동 :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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