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1부)

야설

흔적 (1부)

avkim 0 1718 0

감고있는 눈 속으로 창을통해 환한빛을 느끼며 재민은 눈을떻다.. 한동안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다가 그는 침대맡의 담배각에서 한개피의 담배를 꺼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전날 술을마셔서인지 담배생각보다도 갈증이 더 심했지만 왠지 일어난다는것이 싫어서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창의 햇살때문인지 그가 뱉은 연기가 공기에 흩어지는것이 너무도 선명히 보였다.. 그리고 그는 전날의 일을 머리속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재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한 중소기업에 입사해 수습과정을 거치는 중이었다.. 어제 재민은 직장상사 및 동료들과 퇴근길에 어울려 종로거리의 한 호프집에 들어갔다... 매번 그렇지만 술좌석의 이야기는 거의가 회사에 대한 불만서린 말들로 채워졌고 그런이야기를 듣고있자니 갑자기 짜증이 나서 술취한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밤거리로 나온 재민은 온통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걸었다... 무수히 옆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통과해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밤 열한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각의 지하철은 그래도 사람이 다소 많았다... 조금 지나자 사람이 많이 내려서 빈자리가 보였고 재민은 지친다리를 쉬게할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재민의 눈은 자동적으로 맞은편 좌석으로 향해졌다. 일이 피곤했는지 맞은편 자리의 여인은 연신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있었다... 재민은 그여자의 자는 모습이 우수워 계속 그여인을 쳐다보던중..여자가 크게 고개를 떨구다 재풀에 놀라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드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놀랐다.. 그녀의 모습이 재민의 기억속에 뭍혀있는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저미는 한여인을 생각나게 만든것이다... "연주!"....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히 부르자 갑자기 울컥 그리움이 몰려와 눈시울마져 뜨거워졌다.. 놀랍게도 앞의 여인은 재민의 기억속 한 여인과 너무도 비슷한 얼굴이었고 몇정거장이 지나도록 그녀를 보고 있자니 재민의 마음은 착찹해져 역을 내린뒤 집앞의 포장마차로 들어가 술을 들이켰다,,,한잔 한잔...술이 들어갈 수록 재민의 마음은 더욱 어둡기만해져가는 밤이었다... 입에문 담배재가 재민의 손에맞고 가슴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재민은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갈증이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더해지자 재민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전해지자 이번엔 머리가 아파옴을 느낄 수 있었다. 물을 마셨으나 갈증은 가시질 않고 머리는 아파서 재민은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다시 한개피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뱉으며 그는 한 여인을 생각했다.. 한동안 뭍어두었던 아련한 기억의 한 여인을............. 그날은 대학 새내기들의 신입생 환영회가 있던 날이었다.. 2학년이었던 재민은 그날 주량을 초과해서 마신탔에 많이 취해있었고 자리에서 졸고있는 그를 친한친구인 연재가 부축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아침에 눈을 뜬 재민은 낮선 주위환경에 두리번거리다 옆에 연재가 자고 있음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친구의방에서 자고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와보는 친구 집이었지만 목이 너무 타서 살며시 일어나 냉장고를 찾았다.. 냉장고 안에서 물을 들이키는데..뒷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벌써 일어났네??" "네?....아..네....." 엉겁결에 대답을 한 재민의 눈앞에 한 여성이 서있었다... 스물일곱 여덞 되어보이는 그 여인은 새하얀 티에 아이보리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를 감았는지 아직 마르지않은 긴머리와 그녀의 전체적인 모습이 참 청순해 보였다..

 

"대학생들이 무슨 술을 그렇게 몸도 못가누게 마시고 그래..." "네....죄송합니다..어 제 신입생 환영회가 있어서..그만...." "연재 친구니 후배니??" "네..연재하고 같은과 동기인 재민이라고 해요..유재민..이요" "그래??...같이 술을 마셨는데..재민이는 일찍일어났구나..연재는 아직도 자니??" "네..." "그럼 너 먼저 씻고 연재도 그만 일어나라고해..밥 차릴게...." "네..." 재민은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갔다.. "연재의 누나인가?!....." 세면대앞에서 재민은 방금 본 여인을 생각하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푸석푸석한 얼굴에 밤에 많이 뒤척였는지 머리는 많이 헝클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연재누나와 첫 대화를 나누었던걸 다시금 생각하며 조금 창피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재민은 몰랐다..그녀가 그에게 어떤의미로 다가올런지... 세면을 하고 자는 연재를 깨워 식탁으로 향하자 연재누나는 이미 밥을 차려놓고 국을 그릇에 뜨고있었다...마지막 그릇을 연재앞에 놓으며 연재누나가 말했다.. "연재 너!..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마신다고 전화라도 해야잖아..!" "응?...아아....미안미안...어제 좀 재미있게 놀다보니 그만 깜박했네.." "다음부턴 꼭 전화해..

 

그리고 술 너무 많이 마시지말고..." "응..." "와~~~이거 북어국이잖아?? ..역시 우리 누나밖에 없다니깐..그치 재민아?.." "응??....으응.." "아부하지 말고 얼른 국물좀 마셔...그래야 속 풀어지지...재민이도 얼른 먹고.." "네..." 아침겸 점식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 재민은 연재에게 물었다.. "연재야...어제 내가 술에 많이 취해서 실수는 안했냐??" "실수는 멀....그냥 술에 취하더니 테이블에 엎드려 하염없이 자기만 하더라" "그래?..암튼 고맙다.." "뭐가??" "그냥 이렇게 집에까지 데리고 와준거..." "짜식....어디 우리가 보통친구냐??...그리고 너라면 안그러겠어??.." "그래..참.!...너희 누나니??" "응.." "근데 일요일인데 누나밖에 없네??" "응...나 누나랑 둘이만 살아,,,부모님은 돌아가셨어.." "어?....미안하다 내가 괜한걸 ....." "괜찮아 내가 한두살 어린애냐..그런걸로 시무룩해지게...그리고 너는 나하고 뭐가다르냐?...새삼스럽게.." 연재가 그렇게 말했지만 재민은 여지껏 일년넘게 연재와 친구로 지내면서 오늘처음 그러한 사실을 알게된것에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러고보니 연재와 재민은 친구였지만 서로에 대해 자세한 것은 묻지도 말하지도 못했다는것을 새삼 느낄수 있었다... "너..일요일인데 하숙집으로 갈거냐??" "응..그래야지.." "그럼 그러지말고 우리집에 처음왔는데 저녁때까지 같이있자..아니면 오늘도 우리집에서 자든가..." "아니야...어제도 신세졌는데..오늘은 가봐야지..."

 

"임마!..하숙집에 가면 달랑 벽밖에 더보냐?!..그러지말고 나도 심심하니까 같이 있자 내가 있고 싶어서 그래..." 그랬다..하숙집에 가면 빈방에 혼자 뒹굴어야만 할 처지인 재민은 안그래도 조금 더 있고싶은 마음이 있던차에 연재가 그렇게 말해주자 내심 고마웠다.. "그래..그럼 조금만 더 있을께..." 그날 재민은 저녁까지 연재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고 저녁까지 먹은후 하숙집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왠지모르게 연재의 집을 나서는 순간 외로움이 밀려왔다.. 재민 또한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조차 고등학생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뒤로 혼자지내온 것이다..모처럼만에 따뜻함을 느껴서인지 돌아가는 재민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아쉽기만 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연재누나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파고들었다.."혼자있기 심심하고 외로우면 자주놀러와" 그런 누나를 가지고있는 연재가 새삼 부럽기만 한 날이었다.. 월요일 재민은 일찌감치 학교에갔다..혼자있는 하숙방보다 대학 도서실이 훨씬 공부도 잘돼고 외로움도 들했기에 그는 강의가 있는날이면 항상 일찌감치 학교도서실로 향했다..월요일과 화요일은 아르바이트로 하는 과외가 있는날이기도 해서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것도 있었다,, 한참 도서실에서 있는데 누군가가 재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연재구나..."

 

"야....월요일부터 또 도서실이냐...참 불쌍한 중생이다...히히.." "왠일이야??..아직 강의시간 좀 남았는데 일찍왔네.." "왠일이긴 너보러 온거지..야 ..여기선 그렇고 잠깐 밖으로 나와봐.." "왜??" "그냥 나와봐".. 이유를 묻는 재민을 뒤로한채 연재는 밖으로 향했다..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두잔을 뽑아 한잔을 연재에게 건네자 연재가 말했다. "너 수요일날 미팅하지 않을래??" "미팅??" "그래..내가 이아여대 애들이랑 미팅주선했는데 너도 선수로 뛰어라.." "글쎄....." "글쎄는 무슨 글쎄 ..암말말고 너도 그날 나오는거야 알았지??" "생각해볼께..." 재민은 대학에 들어온후 한번도 미팅이란걸 해본적이 없었다.. 물론 재민도 이성에 눈뜬후부터 남몰래 책도 읽고 때때로 친구들집에서 야한 비디오도 보곤했었지만 아직 한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었다.. "야야 ...웃기지말고 그날은 꼭 나와야해...내가 얼마나 노력한건데...참 그리고 몇일 후에 우리집에 밥먹으러 가자.." "왜?? 무슨날이야??" "아니..내가 누나한테 갈비먹고 싶다니깐 누나가 집에서 찜을 해준다잖아...그리고 너도 같이 데리고오래...아마도 나랑 같은처지인 니가 남같지 않나봐..." "그래....고맙고 누나한테도 너무고맙다고 전해줘.."

 

"얌마 ..그런말은 니가 직접하는거야...." "아~~~~~미안..." 연재가 돌아간뒤 도서실로 돌아온 재민은 연재누나인 연주를 생각했다.. 참 따뜻한 마음만큼이나 아름다운 모습의 누나... 살짝 웨이브진 앞머리를 넘기며 웃음지을땐 너무도 아름다웠던 그녀... 그녀를 생각하자니 가슴이 갑자기 콩콩 뛰기시작했다.. 붉어진 얼굴을 누가 볼새라 그는 고개숙여 괜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강의가 끝난후 재민은 과외하는곳으로 향했다... 재민이 과외하는 집은 남편이 개인사업을 하는 집이었는데 꽤 부유한 편이었다.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고1여고생이 전부인 가정이었는데 재민은 고등학생인 윤경의 가정교사였다..월.화요일 수학을 세신간씩 가르쳤다.. 다행이도 재민이 과외를 시작하고 나서는 수학성적이 올라서 보수가 예상외로 많아 다른 아르바이트는 하지않아도 되었다.. 또한 부모님이 약간의 돈을 남겨주셔서 재민은 굳이 아르바이트를 하지않아도 대학을 졸업할만한 돈은 있었다.. "띵동~~~~!" "누구세요??" "네 재민입니다" "아~ 재민학생 어서와요" 문이 열리자 40중반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윤경의 어머니였다..

 

하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롱치마..흰색과 백색이 매치된 깔끔하고 정갈한 차림의 그녀가 재민을 반겼다..나이가 마흔을 넘겼으나 고생을 하지않은 탔에 눈가의 잔주름 몇개를 제외하곤 그 나이보단 한참 어려보이는 얼굴이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갸름한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쓴 모습이 참 지적으로 느껴졌다. "일찍왔네요...쥬스한잔 마시고 들어가요.." "아니에요...방금전에 커피를 마시고 와서요...윤경이는 방에있죠??" "네..벌써부터 재민학생 기다리고 있어요..그럼 들어가보세요" "네..그럼.." 재민은 윤경의 방으로 향했다..문을열자 항상 준비되어있는 조그만한 상이 보였다. 그러나 방안에는 윤경이 없었다... "어디갔지?? 화장실에 갔나??" 의아함을 느낄 즈음 뒤에서 윤경이 소리를 질렇다. "왁~~~~~~!!!!" 갑작스런 윤경의 고함소리에 재민은 너무도 깜짝놀라고 말았다.. "헤헤~~~~오빠 많이 놀랐죠??" "휴~~~간 떨어지는줄 알았잖아~" 아직도 장난기가 많은 귀여운 고등학생 아가씨인 윤경은 놀란 재민을 바라보며 입술을 조금 내민채로 귀엽게 웃고 있었다.. "재민오빠~~윤경이 보고싶지않았어요??" "이렇게 장난기 많은 아가씨가 어디가 볼게 있다고 보고싶어..

 

보고싶긴..!" "흥!....너무해.....난 몇시간째 오빠오기만 기다렸는데...." "음..그럼 공부 많이 했나보네..오늘은 주는문제 잘 풀수있겠네..그렇게 내가 보고싶었던걸 보면..." "이그~~~누가 선생님 아니랄까봐..보자마자 또 공부얘기.....정말 미워죽겠어.." "금방은 보고싶었다면서 이젠 미워죽겠어??.....하하" "몰라요 나 삐졌어요...." 분홍색티에 짧은 면반바지를 받쳐입은 윤경이 입술을 살짝내밀며 귀엽게 눈웃음지며 재민을 쳐다보고있었다.. 과외를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과외시간은 자칫 잘못하면 너무도 지루한 시간이 될수 있다 ..그래서 그시간이 재미난 시간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거의 과외선생님의 수업방식이 크게 좌우한다..재민은 다행이도 윤경의 성격을 일찍파악해서 너무 무리한 진도보다는 하나를 가르쳐도 확실히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간간히 우수운 이야기와 그나이 또래가 재잘되는 이야기들에 귀를 귀울여 주기도 했다.. 지금 윤경은 재민이 준비해온 문제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민은 윤경의 그런모습을 보다가 문득 도서실로 찾아온 연재를 떠올리며 전날 연재집에서 처음본 연주를 생각했다... 그녀의 웃는모습과 말투를 하나둘 음미하듯 떠올리는데 옆에서 윤경의 목소리가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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