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든가, 뺏기든가, 혹은 믿든가 - 11부

야설

뺏든가, 뺏기든가, 혹은 믿든가 - 11부

avkim 0 1243 0

11. Conspiracy ~ 거짓은 종말의 시작







※주 conspiracy : 음모 




혹시라도 모르는 분이 계실까봐... (저도 사전검색을 이용했습니다 쿨럭...)




























~ 현재













오랫만의 외출. 그러나 그녀는 유쾌하지 않았다. 화사하면서도 수수한, 마치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는 주변 남정네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런 시선들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




- 최대리 부인이시죠? 최대리 문제로 말씀드려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한번 만나뵙고 얘기를 하는것이...




처음엔 사기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최근에 유행하는 보이스피싱...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보이스피싱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인 상진 또한 몇번에 걸쳐서 이상한 사기전화에 너무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 전화는 구체적이여도 지나칠정도로 구체적이였다. 게다가 자신을 상진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라며 이름까지 말했다. 혹시라도 전화로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캐묻진 않을까 긴장하면서 받았었던 그 전화. 하지만 자신을 사장이라고 주장한 그 남자는 그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묻지 않았고 회사의 주소와 찾아오는 법을 알려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애는 몇번이고 인터넷으로 그 회사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장의 이름과 일치하는지, 그리고 찾아오라는 주소지와 본사의 위치가 같은지를 확인했다. 다른점이 없었다. 물론 그 남자가 자신을 그 회사의 사장이라고 사칭한 것일수도 있었다. 어쨋든 상진이 다니고 있는 회사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이였다. 적어도 찾아오라는 위치를 사기친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 왜 사장이라는 사람이 일개 직원에 불과한 자신의 남편을, 그것도 남편과 직접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는걸까. 미애가 아무리 고민을 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고민이 너무나도 깊은 나머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상진이 자신에게 무슨 일 있냐며 걱정까지 했었다. 차라리 그때 상진에게 터놓고 말했으면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어쨋든 자신보다 상진이 훨씬 사회경험이 많고, 회사의 일이니 상진이 그녀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말을 꺼낸다면 상진은 왜 사장이 미애에게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상진에게 사장에게 전화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결혼한 이후로 언제나 어려운 일은 상진이 도맡아서 해결해왔었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그녀가 상진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자신이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부담, 생활비 마련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그가 짊어진 짐들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 저 최상진 대리 아내되는 사람이에요... 회사 건물 1층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가야하죠?"




"도착하셨군요. 혹시 어떤 옷 입고 오셨어요? 아아... 다른 의미는 아니고 인상착의를 확인해야 제가 모시기 편해서 그런겁니다."




"... 흰색 셔츠에 정장... 아, 파란색 가방 들고 있어요."




분주한 회사 1층에는 자신과 비슷한 정장을 입고 있는 여자가 한두명이 아니였기에 그녀는 그녀를 특정지을만한 뭔가를 말해야했고, 그녀는 가방의 색을 말했다. 곧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고, 곧 멀뚱멀뚱 서있던 그녀에게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정미애씨 되시죠? 사장님께 말씀 드렸어요. 따라오세요."




미애는 그녀의 뒤를 따르면서 힐끗힐끗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갓대학에 졸업한듯 그녀의 나이는 많아봤자 25살이나 될까 하는 외모였다. 딱히 겉만 보고서는 대단해보이지 않았는데 어린 나이게 벌써부터 이런 회사에서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했다. 결혼한 후에 상진의 말대로 그냥 계속해서 교사 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던 사이 미애와 그녀를 안내하는 여자가 탄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꼭대기인 옥상에 도착했다.




분주히 직원들이 왔다갔다하는 1층과 달리 24층은 그 넓은 공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업었다. 그리고 보이는 문 2개. 사장실, 사장회의실... 그녀는 미애에게 사장실의 문을 가리키며 들어가라고 말을 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문 앞에 혼자 남은 그녀는 고급스러운 벽과 바닥을 보면서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이 큰 기업의 사장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일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며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남자의 얼굴을 완성시키는 것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돈과 지위라는 것을 증명하듯, 나이 40치고는 꽤나 젊어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이개념을 생각할 수 없을정도의 분위기가 그의 몸에서 풍겨나오는것 같았다. 전화를 통해 목소리만 들었을때는 굉장히 점잖은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녀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거의 일치하는 인상이였다. 물론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보긴 했지만... 그리고 그 우도혁 사장의 앞에 앉아있는, 우도혁보다는 젊어보이는, 하지만 그 역시도 우도혁과 마찬가지로 쉽게 대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딘지모르게 화가 나 있었다. 그것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더욱 어려웠다.




"저... 아... 안녕하세요..."




떨리는 목소리... 그녀는 말을 내뱉고는 속으로 자신을 탓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괜한 추태를 보였다가는 상진에게 불이익이 갈수도 있다는 불안감때문에. 우도혁 사장과 그 앞에 앉아있던 남자는 그녀의 말에 인상 한번 변하지 않았다. 그저 우도혁이 한켠에 있는 고급스러운 의자를 끌어다주었다. 말은 없었지만 이 자리에 앉으라는 의미... 미애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너무나도 무거운 공기...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달아날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은 이 자리... 하지만 갑작스러운 우도혁의 앞에 앉아있던 한 남자의 말에 미애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사장님! 어떻게 하겠다는겁니까! 어떻게 저희 회사에 끼친 손해를 갚겠다는 말입니까!"




"장사장님. 진정하시고... 피해액은 저희가 알아서 몇배로 갚아드릴테니..."




"돈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히 돈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사장님? 이미지... 우리 회사 이미지는 어떻게 합니까? 여기에 오기 전까지도 우리 회사에 항의전화가 빗발치는걸 보다 왔습니다. 정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장사장님께는 정말 죄송스럽지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그리고 장사장님 말씀대로 최대리 부인분을 이렇게 모셔왔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분위기는 험악해보였다. 나이가 헐씬 많아보이는 우사장이 젊어보이는 그 장사장이라고 하는 남자에게 쩔쩔매고 있었다. 미애는 정신이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신경써서 듣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 그녀가 이 자리에 불려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손해액은 5000억입니다. 아시죠?"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한번에 그걸 다 변상하는건..."




"그럼 뭐 어쩌라는겁니까? 이게 다 최대리 그 썩을놈의 새끼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까!!"




화를 내고 있는 남자의 입에서 최대리라는 말이 나오자 미애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설마했었다. 그녀가 이 자리에 불려온 것이 상진이 회사에 어떤 잘못을 해서 불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생들이 잘못하면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해서 대신 혼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며,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최근 상진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얼굴표정이 때때로 굉장히 어두워지곤 했었던 것... 설마 회사에서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로 인해 미애의 머릿속에는 불안감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우도혁과 장현우의 대화에 의해, 일방적인 장현우의 공격이였지만, 그 씨앗이 싹을 트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건가요!"




"... 네...? 네? 제가요...?"




"남편분때문에 손해본거 어떻게해서든 책임지셔야할거 아닙니까. 손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에 이 사건 수사한다고 검사들도 회사에 들락날락거리고 있습니다. 당신 남편분때문에 저희가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하게 생겼다구요."




"그... 저.... 저는..."




수사. 검사. 법적 책임... 드라마에서나 들어봤을법한 단어들은 미애의 머리속을 휘젓고 있었다. 상진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된다고 생각했던 미애였건만, 실상은 어떻게해야 자신이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조차 몰랐다.




"설마 저희 남편은 잘못이 없어요, 같은 허접한 소리 하시는건 아니겠죠? 최대리가 유용한 회사돈이 얼만지 아십니까? 저희 부사장한테 접대비용으로 쓴 돈이 자그마치 5백만원입니다, 1000만원. 거기에 부사장한테 뇌물로만 5억이나 건네줬구요. 게다가 여자까지 ?어요.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우리 부사장, 지금 아내한테 이혼소송까지 걸렸어요. 이제 아시겠어요? 이게 얼마나 큰 일인지."




더이상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달아날 곳도 없었다. 미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잖은 말투로 자신을 대해줬던 우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우사장은 틀렸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큰일인건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에요... 뇌물수수에 성접대까지... 요즘 성접대파문때문에 시끄러운거 아시죠...? 저희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저희 남편은... 남편은 어떻게 되는거죠...?"




미애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장사장과 우사장의 입가에 살짝 비릿한 미소가 스쳐지나갔지만, 절망으로 가득한 미애가 그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미애를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말이 우사장의 입을 통해 전해져왔다.




"아무래도... 감옥을 가는걸 면치 못하겠죠..."




"거... 거짓말이죠...? 사장님... 그거... 거짓말이죠...?"




"...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최대리가 회사돈을 마음대로 빼돌렸다는 증거까지 있어서... 만약에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된다고 하더라도... 그 돈은 모두 변상하셔야합니다..."




"어... 얼만데요...?"




"... 부디 놀라지 마시길... 40억... 입니다..."




"사... 사... 40...억.... 이...요...?"




"우리한테도 변상해야할게 있어요. 200억. 200억입니다. 우리쪽 이사 중 한명이랑 짜고서 우리쪽 자금을 마음대로 횡령했어요. 이제 아시겠어요?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미애의 머리속에 0이 가득했다. 0이 몇개인가... 얼마전까지만해도 통장을 확인하며 집을 살때 대출금을 다 갚고 일단은 2억정도만 만들어보자고 결의했던 그녀와 상진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우사장과 장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돈의 액수는 너무나도 스케일이 다른 것이였다. 그 액수가 너무나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였을까, 갑작스레 미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이 고작 이런말을 하자고 그녀를 이런 자리에 부른 것이 아닐 것이였다. 분명 뭔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고, 그 열쇠는 자신에게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제... 제가 뭘 하면 되죠?"




"......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남편만... 남편만 괜찮다면... 뭐라도 할게요..."




"정말로 뭐든지 하시겠습니까? 그래주신다고 말씀만 해주시면 저희가 최대리에게는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를 해드리죠."




미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진이 뭣때문에 그런 돈을 가지고 실수를 했는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상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뻣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미애씨가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설명해드리죠. 법적 책임은... 뭐 미애씨만 열심히 해주신다면 제가 어떻게해서든지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그쪽도 결국엔 돈이면 해결되는 문제긴 하거든요."




"저... 그렇게 많은 돈은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없으시겠죠. 우사장님한테 40억. 저희한테 200억. 게다가 그쪽 처리비용까지 대충 따져서 60억정도... 도합 300억이란 돈이 미애씨한테 있을리가 없겠죠. 만약 있었으면 그 최대리가 그런 짓을 했을리도 없구요."




다시 한번 장사장의 입에서 이번 일의 원흉은 상진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죄까지 사랑할 수 있으니까. 아니, 오히려 미애는 그가 그동안 자신에게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라는 걱정마저 하고 있었다.




"이 각서에 서명하시지요."




"네...?"




"잘 읽어보시고 서명하세요. 그것이 남편분을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장사장은 그녀에게 서류봉투를 건넸다. 그것을 건네받은 미애는 봉투 안을 확인했다. 그곳엔 A4용지 한장이 들어있었고 미애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그 종이에 쓰여진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특수계약서




나 정미애는 내 모든 신체권리를 6개월동안 장현우에게 양도함으로써 300억을...







"이... 이게 뭐죠...?"




미애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신체권리를 양도한다는 말은 뭐고, 그 아래 써져있는 괴상한 말들은 또 뭐란 말인가.




"순진하게 왜그러시나. 300억이야, 300억. 설마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 라고 하려고 했던건 아니잖아. 안그래? 돈이 없으면 니년 몸뚱아리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될거 아니야! 안그래!"




"도.... 돼.... 됐어요!! 그런 분들로 안봤는데...! 저 이거 못본걸로 할게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든지 말든지. 뭐... 니년이 그 문을 나가면 니년 남편은 한동안 콩밥을 먹겠네. 얼마나 먹으려나~~ 한 10년은 먹으려나? 하하하. 뭐, 감옥 갔다와서 평생동안 노가다를 해도 우리한테 돈은 갚을 수 있으련지 모르겠네."




비열한 웃음소리. 하지만 상진이 감옥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게다가 돈도 문제였다. 장사장의 웃음소리를 너무나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애는 눈물을 흘리며 장사장에게 무릎을 꿇고 빌고 또 빌었다.




"울지마. 운다고 누가 알아줘? 그냥 울필요 없이 이 각서에 싸인만 하면 된다니까?"




그 각서에 써져있는 각종 어려운 용어들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미애는 절실하게 장사장의 바지자락을 잡고 애원했지만 오히려 돌아오는 것은 장사장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정신차려. 이것도 많이 봐주는거야. 생각해봐. 어디가서 니년이 몸을 팔아서 300억을 구해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엉?"




"흑흑... 제발요... 저... 남편밖에 없어요..."




"6개월이야, 6개월. 남편 사랑하잖아? 안그래? 남편을 위해서 그것도 못한다면 말 다했지 뭐. 그럼 없던걸로 하고 각서는 찢어버리지 뭐."




"자... 잠깐만요...!"




장사장의 두 손이 서류봉투를 통째로 찢어버리려는듯이 붙잡은 순간에 미애의 외침, 장사장은 찢으려던걸 멈추고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 시간을 주세요..."




"뭔시간?"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주세요..."




"허허... 내가 니년을 어떻게 믿으라고 시간을 달라는거야?"




"장사장님... 그만하면 되지 않습니까... 미애씨에게도 시간을 조금 드리도록 하죠..."




"참나... 알겠습니다. 아무튼 난 오래 못기다립니다! 그렇게 아세요!!"































"응. 김비서. 나 장사장이랑 중요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절대로 사람 들여보내지 마.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인터폰이 끊긴 후 우도혁과 장현우는 방금전까지 한 여인이 앉아있던 자리를 바라보고는 통쾌하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 고년 참. 실제로 이렇게 보니까 정말 물건이긴 물건이네."




"그러게나말입니다. 까딱 잘못했으면 그자리에서 옷 찢어버리고 조져버리고 싶었다니깐요."




"허허... 장사장! 이사람, 벌써부터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되겠나."




"농담입니다 농담. 하하... 그나저나 액수가 너무 황당한거 아닙니까?"




"음, 그건 괜찮습니다. 어차피 집에서만 있는 주부가 그런 관념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큰 액수때문에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겠죠."




우도혁과 장현우가 있던 사장실의 뒷쪽에 있던 문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성찬현 교수... 아까부터 사장실 안에 있는 사장 전용 휴게실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모조리 엿듣고 있던 성교수였고, 성교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우도혁과 장현우였기에 그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찍은것 같다는 생각에 도취되어있었다.




"그나저나 어땟습니까, 제 연기."




"괜찮더군요. 남우주연상감이였습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 성교수님. 농담도 참..."




"만약에 저 여자가 최대리한테 말이라도 하면 어떻게합니까?"




"흐음... 절대로 말은 못할겁니다. 제 생각에 저 여자는... 그런걸 절대로 남자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타입이거든요. 물론,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겠죠. 더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두 분 사장님께 들은 얘기가 거짓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할겁니다. 하하하..."




".... 그럼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뭐... 계획대로... 그녀가 빠르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후후... 그나저나 장사장. 주의해야해. 알지?"




"그럼, 알다마다요 형님. 솔직히 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 상진




성교수와 만났다.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상황이 상황인만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수철과 동행했다. 물론 수철과는 단 둘이 자주 만나고 있었지만, 수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둘이서 술자리를 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아무리 성교수를 포함해 우사장이나 장사장이 서로를 지켜주기로 결의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푼 것은 아니였다.




별로 중요한 얘기를 하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어둠의 장막을 펼쳐서 혹시라도 꿈에 대한 내용이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게끔 한 후 자연스럽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내 주변에도, 수철의 주변에도, 성교수의 주변에서도 그 시험의 참가자들이나 참가자들의 부인을 마주칠 수 없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술이 넘어가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렸다. 사는 이야기... 뉴스... 술자리란 늘 이런 식이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건지, 술을 마시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는건지조차 잊었다. 술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식을 바로잡는것은 성교수의 몫이였다.




"그나저나, 수철군. 다행으로 알아야해."




"네?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군 말일세. 아마 최군이 마음만 먹었으면 벌써 다른 부인들을 다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을걸세."




"교... 교수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틀린말 했나? 자네 능력이 그렇지않은가. 크으... 수철군, 그거 아나? 최군이 젊었을때 말일세. 하루에 여자를 3명이나 꼬시는걸 내 두 눈으로 직접 본적이 있다네."




"정말이요? 와... 형님. 저는 형님이 그렇게 대단한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혹시 모르지. 내 아내나 자네의 아내도 예전엔 최군의 여자였을지..."




"교... 교수님!! 옛날 일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맞은 반은 수철의 아내 이야기... 틀린 반은 성교수의 아내 이야기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성교수의 아내는 맞는지 틀린지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죽도록 잊고 싶은 과거 언젠가의 몇번 먹다버린 여자일수도 있었다. 괴로웠다. 잊고 싶은 과거였는데... 내 얼굴에 그 괴로움이 묻어있었는지 성교수와 수철은 더이상 나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늘따라 술이 땡긴다... 































~ 미애




그 회사의 1층까지 내려와서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무슨 생각으로 걸어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뭘 느꼈는지, 왜? 그런 질문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현관 문을 열고 내 집으로... 우리의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전생에 뭘 잘못했길래... 도대체 왜 하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걸까?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결혼식의 사진.... 웃고 있는 내 모습과 그 옆에 서있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남자... 미웠다... 너무나도 미웠다... 왜... 어쩌자고 그런 실수를 한 것일가... 왜... 나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을 하면서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돈을 탐해서 그런 실수를 해버린 것일까... 미웠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하지만 그를 향한 나의 원망은, 잔뜩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들어온 그의 모습을 보고는 사르르 녹아버렸다. 그래, 분명 뭔가 이유가 있었을거야. 어쩌면 그게 맞았다. 자신이 아는 남편은, 허튼 이유로 그런 말도 안되는 비리를 저지를 인물이 아니였다. 뭔가 음모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누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남편은 억울할 것이다. 어찌나 억울한지 남에게, 그리고 나에게조차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걸 봤을때, 그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가 짐작이 되었다.




"음... 미애야.."




"... 어휴... 술냄새... 빨리 자..."




"으음... 미애... 울었어? 우리 미애... 왜 울었어?"




"울긴 누가 울었다그래... 당신 취했어... 빨리 자..."




"그래? 당신 남편 취했나보다... 하아... 미애야... 사랑해..."




술을 마셨다는 것, 그리고 취했다는 것... 그런 그가 말을 한다는 것... 그의 말이 단순히 술에 취해서 하는 헛소리일수도 있었고, 취중진담일수도 있었다. 아마 헛소리인지 취중진담인지는 그 사람만이 알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데 나는 그의 말에서 어떠한 거짓이나 과장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말... 말투 자체는 가볍지만 그 가벼움속에 묵직함이 담겨있었고 진솔함이 담겨있었다.




오늘 그들... 장사장과 우사장이라는 남자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잠들어버린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보인다. 항상 듬직하고 씩씩하고 멋있던 남편이였는데... 오늘처럼 초라해보일때가 없었다. 그런걸까, 이런 초라한 모습을 내게 보이기 싫어서 그는 그렇게 혼자서만 모든 고민을 끌어안으려고 했었던걸까... 왜...? 왜...! 나는 당신이 안쓰럽고 초라해도... 남들이 추잡하다고 욕해도 당신을 사랑할텐데... 왜.......




하지만 왜냐고 끝없이 반문해도 소용없었다. 그 답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약한 모습을 숨기고, 내 초라한 모습을 숨기고... 그렇게 언제나 밝아보이는 모습만, 좋아보이는 모습만 보이고 싶은 것이다.




남편이 너무 깊게 잠들어서일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흐느끼고 있는데도 곤히 잠들어있다. 그래... 힘들었겠지... 피곤했겠지... 평소에는 그토록 넓었었던 그의 가슴이, 오늘따라 왜이렇게 초라해보이는지... 그리고 그 가슴에 안겼을때 느끼는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안되... 이렇게 차가운 가슴은 당신의 가슴이 아니야...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선택하면... 6개월이라는 시간... 짧다. 확실히 6개월은 짧다. 하지만 길다. 너무나도 길다. 6개월... 6개월동안... 너무나도 길다. 나는 아직 한번도 이 남자... 나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겨본적이 없다. 다른 남자를 남자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차라리 과거였다면... 과거였다면 나중에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된다고 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왜 하필이면 지금일까... 왜 하필이면 이 남자를 두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 남자를 두고 왜 그런 선택을 해야하는걸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눈물이 쓰기 때문일까... 쓴웃음이라는 표현이 적절한것 같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은 달고, 슬퍼서 흘리는 눈물은 쓰다. 지금 나는 슬프다. 분명 내가 남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내가 6개월만 참으면 이전처럼 남편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평소에 그토록 내가 남편에게 힘이 되줄 수 있는데, 막상 힘이 되어줄 상황이 되고나니 기쁘기는 커녕 너무나도 슬프다. 속상하다. 여보... 나 당신을 배신하는거 아니야... 사랑해... 사랑해서 그래... 웃기지만...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래...




"용서해줄거지...?"




"...... 으음..."




잠결에 내는 소리... 그의 대답이 긍정이길...




"나 미워하지 않을거지...?"




"........"




이번엔 답이 없다. 미동조차 없고...




"날... 영원히 사랑해줄거지...?"




"........"




이번에도 답이 없다. 하지만 잠결에 뭔가를 찾아서인지, 그의 가슴에 안겨있는 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사랑해... 영원히...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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