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7부)
사람에게 일어나는 그 수많은 사건들을 밤은 어둠으로 덮고 빛은 또 다른 사연들을 만 들어 간다..진정 아무리 아픈 사연도 물론 예외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대게가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변화속에 차차 그저 하나의 기억으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당장의 죽을것만 같은 아픔도 먼 훗날 조금더 안정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사람이다.. "불같은 감정은 일찍 타버려 재가 되고만다".. 누군가는 사람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순간적인 이 감정의 기복을 불로 비유했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기에..그렇듯 불같이 뜨거울수 있고 또 그 댓가를 받아들일 마음까 지 가지고 있는것이다. 먼 훗날이 되면 지금 연재가 느끼는 이 아픔조차 어쩌면 한낱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젊은날의 한조각 기억으로만 남을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건 훗날의 이야기였고 만취한 전날밤을 비웃듯 여느날보다 연재는 일찍 잠에 서 깨어있었고 전날 보다 더욱 선명히 어제의 기억들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무엇이 두려운걸일까..진작부터 깨어났음에도 그는 눈을 뜨기가 싫었다..술기운으로 인한 두통조차 지금 그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정도로 그는 눈을 뜨고 달라지지 않은 어 제와 같은 하루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냥 이렇게 눈을 감고 어둠속에 자신을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연주는 어젯 밤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연재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몇일전 연재가 어두웠던것도 어제의 일과 무관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 다... "술에 취해서도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더라고..." 어제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말씀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연재가 여자문제로 고민에 휩싸인것 같다".. 밤새 생각해봐도 연재의 처음보는 어제와 같은 모습은 그 이유밖에 없었다...그렇게 생각을 하니 연주는 더욱 어려웠다... 비록 자신이 누나일지라도 연재에게 강제로 이야기를 들을 순 없는 문제였다..특히, 그것이 민감한 이성관계의 문제라면... 그런 생각들로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연주는 또다시 시작되는 아침에 출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연주는 연재방을 들어가보려다가 문뜩 거실을 쳐다보았다...
"재민이 또한 연재로 인해 잠을 늦게 청했나 보구나.." 거실에서 재민은 쇼파에 웅크린채 잠이 들어 있었다... 연재 생각으로 인해 오히려 재민에게 하숙방보다도 더 불편한 밤을 보내게 한것같아 너무도 미안했다... 연주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가져와 자는 재민의 몸에 살며시 덮어주었다... "찰칵" 생각대로 연재는 아직도 잠을 자고 있었다... 방안에서는 술냄새가 연주의 코를 찔러왔다.. 연재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 보던 연주는 가만히 손을 가져가 연재의 빰을 만지며..말 했다... "연재야, 너의 이런 모습에 누나는 지금 슬퍼..우리 연재 말못할 고민 빨리 극복해서 누나에게 밝은모습 보여주렴.." 연주는 말을 마치고 잠시 더 연재의 모습을 보다가 방을 나섰다. 연주가 나간후 연재는 비로소 감긴 눈을 떴다.. 자신으로 인해 분명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했을 누나... 누나의 그러한 따뜻한 한 마디는 아침 나절 연재의 눈에 눈물을 보이게 만들고 말았다 ...
한참을 천정을 쳐다보던 연재의 머릿속에는 어느덧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그건 맑 게 웃는 지영의 모습이었다.. 지영..과연 그녀가 그에게 이렇듯 소중한 사람이 될 수있는 일말의 가치가 있단말인가 .... 도대체 무엇때문에 난 지영에게 그토록 순식간에 허물어져갔는가.. 대체 그녀가 밤에 어딜 다니던 그게 날 이토록 힘들게 만들수 있는것인가... 연재는 지영을 부정하려 끊임없는 부정의 질문들을 던져보았지만 그럴수록 마음만 더 아려올 뿐이었다.. "그래..모든것을 알고도 그녀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다면 모든걸 인정하자."..연재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녀에게 경제적인 이유가 그일을 선택하게 만들었다면..지금 그녀의 짐을 덜어줄 능 력이 없는 나로선 그것조차 하나의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주자... 설마,그녀도 그일이 좋아서 하진 않을것이 분명하기에 일단은 모든걸 나혼자만의 비밀 로 묻어두자... 지금 난 오로지 "지영"그 자체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연재는 그렇게 마음을 굳이자 더이상 이렇게 누워있을 순 없다고 생각됐다...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야만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고 앞으로 연재에겐 더욱 큰 아픔들이 찾아올 수 있는길은 스스로 택 한 연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거실로 나온 연재는 재민을 찾았다...그러나 재민은 없었다..
도대체 언제 나갔는지 조차 연재는 알 수 없었다.. 재민을 찾는 시선속에 탁자위의 메모지가 보였다.. "연재야..술취해 잠든 너를 두고 먼저 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너 또한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잠이 깬후 맑은 모습으로 만나자..누나가 아침부터 국을 끓이더구나..아침 꼭 먹어 .." -재민- 재민의 메모를 읽으며 자신을 생각하는 깊은 배려에 연재는 감사했다...연재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묶은 감정을 씻어내려는듯 화장실 안의 샤워기 소리가 유난히 크 게 들렸다... 재민은 몇일만에 돌아오는 하숙방이 왠지 낮설게 느껴졌다.. 꼭 죽은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재민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새벽녘 자신의 몸을 덮어오는 따스함을 느끼며 연주 가 나간후 자신도 조용히 연재집을 빠져나왔다...아무래도 그러는것이 연재도 재민도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다시 혼자가 된 재민은 피로가 엄습함을 느끼며 늦은 잠을 청 했다... 어두운 방안에서 재민은 눈을 떻다.. 벌써 시간은 오후 다섯시를 넘기고 있었다.. 열시간 이상을 꼬박 잠들었던걸 느끼며 재민은 배고픔을 느꼈다. 우수웠다..요 몇일 재민은 눈을 떠서 감을때까지 연주와 영은으로 인해 참 많은 고민 을 했지만 배고픔은 그런것관 무관하게 찾아들었다... 재민은 마땅한 요깃거리도 없음을 알고있었기에 가벼운 세면을 마치고 거리로 나갔다 .. 저녁을 밖에서 해결한 마음으로... "띠리리리리~"
거리를 걷다가 재민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재민이니?? 나야..영은이..." "응..그래..." "너 연재집에 있다면서??..몸은 어때?? 밥은먹었어??" "응..몸도 괜찮고 밥도 먹었어.." 재민은 하숙방으로 돌아온걸 새삼 영은에게 말하기가 싫었다. 분명 영은은 그 말을 들으면 지금 곧장 오겠단 투로 말할것이다. "그래..다행이구나..나 니가 걱정되서 전화걸었어..." "그래 고마워..이젠 괜찮아..내일부터는 학교도 나갈거야.." "응..." 물어볼말을 다 물어보고 대답할말을 다 대답한 그둘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재민이었다... "그래 전화해주어서 고맙고..연락할게.." "그 그래..." "그래 그럼 이만 끊을게..." "응..." 영은과 전화를 끝내고 재민은 애초에 밥을 먹으려 했던 마음을 바꾸고 그냥 좀 더 거 리를 걷기로 마음먹었다... "띠리리리리~" "여보세요..." "나야..연재.." "응??..그래 연재구나?? 몸은 어때??" "응 좋아..재민아 전화로 이런 이야기 하기 그렇지만 미안하다." "뭐가...??" "그냥 ....아무튼 미안하다.." 연재의 그말이 무슨 의미인지 재민은 알 수 있었다.. "미안하긴 ..오히려 내가 미안한걸..." "짜식...그래 그럼 우리 내일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서 만나자" "그래..." 연재의 전화로 인해 조금 기분이 좋아진 재민은 거리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재민과의 전화 후 얼마지나지 않아 연주가 들어왔다.. "누나 이제와??"
"응..연재 괜찮니??" "응..누나 미안해 ..다신 그런일 없도록할게..." "아냐..한번쯤 그럴수도 있지뭐..."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약간의 어색함이 그둘을 감싸고 있음을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재민이는??" "응..조금전에 갔어..이젠 괜찮다고 하면서.." 연재는 연주가 걱정할까봐 사실관 다르게 말했다.. "그래..재민이에게 미안하구나..오히려 불편했을거야..." "........." 연재는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누나 밥먹었어??" "아니 아직..." "그래?? 나도 아직 안먹었어..누나 배고프다..." 그말에 연주는 서둘러 방으로 향하며 말한다.. "그방 차려줄께 조금만 기달려..." "아니야 오늘은 내가 차릴게 국만 데우면돼..." 연재의 말에 연주가 멈칫한다..그러나 이내 발걸음을 돌리며.. "그럼 오늘은 우리 연재가 차려주는 밥을 얻어먹어볼까?" 말을 마치며 연주는 방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