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 3부1장

야설

알바 - 3부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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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지혜를 데리고 토론토에 갈 준비










[1]

오늘이 12월 20일이니까, 이제 사흘 후이면 한수정이 온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전에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다리는 것이 점점 더 지겨워진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면서 스릴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군대에서 전역을 앞두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오늘도 아침에 출근해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내 휴대 전화기로 전화가 들어온다. 모르는 번호인데, 전화 번호가 이상하고 숫자가 엄청 길다. 나는 중국에서 오는 보이스피싱 전화인 것으로 생각하고 받지 않았다. 그런데 십분 정도 지나서 전화가 또 오는데, 아까 본 그 번호랑 비슷한 번호가 뜬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여자의 목소리이다.













"김태현 회장님 이세요?"

"누구세요?"




"자기야. 나야. 토론토. 최은희."

"아. 누나? 잘 있었어?"




"내가 전화로 말할 수는 없고, 이메일로 보냈으니까 읽어봐."

"무슨 일인데 그래?"




"읽어보고, 크리스마스 잘 보내."

"한수정은 뭐해?"




"여기야 늘 그렇지. 나 지금 일 때문에 엄청 바쁘거든요.

그럼 끊는다."










[2]

한수정이 아니고, 최은희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다니. 무슨 일인데 전화로 말하지 않았을까? 엄청 궁금해진다. 나는 포털 사이트의 이메일을 열고, 받은 메일의 목록을 살핀다.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발견하고, 재빨리 클릭을 해서 열었다.







To : 태현.




여기 토론토에서도 우리는 모두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한수정은 너에게 간다는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어. 가슴이 더 커졌단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감정에 휘말려서 이성을 잃고, 엉뚱한 짓을 하지 말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해. 태현씨가 그렇게 한다면, 내가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어.




태현씨는 이 글을 읽는 입장이지만, 이 글을 태현씨에게 써야 하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도 생각해줄 것을 부탁해.




어제 오후에는 수정이 혼자 백화점에 간다고 했어. 너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했대. 그런데 얘가 자기 차를 가져갔는데,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좌회전 신호를 받고 핸들을 틀었는데, 건너편에서 화물차가 과속으로 직진해오면서 수정이 차를 들이받은 거야. 다행히도 구급차가 빨리 와서 수정이를 병원으로 옮겨갔다. 아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병원에 들렀는데,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어.




병원에서 의사들이 하는 말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깨어나서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너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너는 이 일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십자가를 메기로 하고 이 글을 쓴다. 나를 용서해.




한수정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지 말아야 할 지는 태현씨가 알아서 결정해. 그 분들께 내 입으로 이 사실을 알릴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다른 일들은 다음에 얘기해줄게.




아무리 슬프고, 마음이 아파도, 아기 예수님은 오신다.

Merry Christmas!







From : 은희













[3]

태양이 빛을 잃은 것처럼 눈 앞이 캄캄해진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일까?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신께서 우리를 외면하시는 것일까?




사고가 나는 순간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한수정이 너무 불쌍하고,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나는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꼬옥 감았다. 그런데 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그냥 기도가 나온다.













전능하신 신이시여. 한수정에게 잘못이 있으면 차라리 나를 벌하십시오. 한수정이 자기 인생에서 혼자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고 낯선 외국 땅에서 바둥거리는 것이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한수정을 살려주십시오. 




한수정을 다시 전처럼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거룩하신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나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이미 기독교인이 된 기분이다.




내 뺨이 뜨겁다.

내 눈물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4]

"회장님! 기도하면서 울어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다.

송실장이다. 

그녀가 내 앞에 서서 나에게 티슈를 내민다.




나는 그녀를 내 옆으로 오게 해서 이메일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몸을 구부리고 노트북의 화면을 들여다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창밖에 보이는 것은 겨울날의 뿌연 잿빛 하늘이다.




아마 일기예보에서 말한 것처럼, 비가 내릴 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눈물을 흘릴까?

그렇다면 한수정은 "저 세상"이라는 곳으로 갈까?

이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저 세상"이라는 곳이 있기는 있을까?

신이 있고, 그 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능하다면,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초점 일은 눈으로 머엉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5]

송실장이 나에게 다가와서 내 손에 머그잔을 쥐어준다.










"회장님. 커피 드세요."










나는 잔을 받기는 했지만,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서 마시지 않고 그냥 들고만 있었다.










"참나. .."

"......"




"회장님께서 슬퍼하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실지를 빨리 결정하십시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우선 두 가지야.

한수정 부모님께 알린다.

그리고 토론토로 간다."




"그 생각에 대해서 무리가 없을 지, 더 깊이 연구하십시오.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고, 저 분 이메일에도 적혀있습니다."







또각 또각 ..







송실장은 발소리를 내며 내 방을 나간다.

송실장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인간이거나 아니면 로보트 같다.




서운하고 얄밉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송실장의 말이 옳다.













[6]

송실장이 아이린과 같이 들어온다. 그녀는 아이린을 내 자리로 데리고 가서 최은희가 보내온 이메일을 보여준다. 아이린의 탄식소리가 들린다.










"하아. .. 어떡해."










아이린이 나를 쳐다보다가 송실장과 같이 밖으로 나간다.

나는 한참을 창가에 서있다가 내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7]

다시 아이린이 송실장과 같이 들어왔다.










"어쩔 생각이죠?"

"가야지."




"부산으로 연락 했어요?"

"아직."




"연말 연시이니까, 애들 공부하는 것은 걱정하지 말아요.

그 대신에 지혜를 데리고 가세요."




"지혜를?"

"안그러면 나중에 난리가 나요."




"학교에서 하는 자율학습은 어쩌고?"

"지혜는 그런 것 절대 안한다고 해서 다 빼기로 했어요."




"아직 방학도 안했는데 .."




"그런 것은 내가 지혜 엄마니까 나한테 맡겨요.

그럼 우선 비행기 티켓부터 서둘러야 해요. 연말이라서 어떨지 모르겠네."




"한수정 부모님 전화 번호를 모르는데."

"부친이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라고 안했나?"




"맞아요. 구상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한영식."










송실장이 끼어든다.










"티켓은 지금 바로 예약하겠습니다.

구상 고등학교로 전화해서, 그 선생님이 회장님 전화로 전화하라고 전하겠습니다."










송실장은 로보트처럼 말하고,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간다.













[8]

아이린이 들어왔다.










"이코노미로는 직행 노선에 자리가 없어요. 

벤쿠버나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노선도 그쪽에서 연결이 쉽지 않대요."




"기다려야죠. 그렇다고 비지니스석을 탈 수도 없잖아요."










송실장이 들어왔다. 나에게 팩스를 내민다.










"일단 가는 노선은 예약 O.K. 나왔습니다.

내일 오후 4시 50분 출발입니다.

돌아오는 노선은 대기중입니다."







17 시간 50분

10 : 20 인천 - 09 : 20 벤쿠버

13 : 00 벤쿠버 - 20 : 25 토론토










그런데 내 전화기로 전화가 들어온다. 모르는 번호인데, 느낌이 한수정 아버지 같다. 그런데 받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송실장이 답답해하다가 자기가 받아버린다. 그리고 수정이 사고 소식을 말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송실장이 나에게 내 전화기를 넘겨준다.










"계속 통화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위로하는 말을 하고, 내가 내일 출국할 계획임을 이야기했다. 그도 자기가 티켓을 구하는 대로 오겠다고 했다. 그가 내일 내 출국 시간에 맞추어서 공항으로 오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송실장이 내게 말했다.










"내일부터 보름 동안 휴가로 처리하겠습니다.

더 필요하시면 연락을 주십시오.

그 동안 회사 일은 필요한 경우에는 이메일과 전화로 보고하겠습니다."




"일주일 정도만 있을 생각인데?"




"그런 것은 거기 가셔서 상황을 보시고 난 후에 결정하셔도 됩니다.

그럼 지금 퇴근하셔서 준비하십시오."




"나랑 같이 나가요. 지혜 여행 준비도 오늘 아니면 안되겠네."










송실장은 로보트이다.

아이린은 나보고 기다리라면서, 자기는 디자인 작업실에 갔다온다면서 나간다.










[9]

아이린이 나가자 송실장은 갑자기 나를 안고 짧게 키스한다.










"자기 보고 싶어서 어떡하니?"

"누나. .. 몇일 안걸려."




"하아. .. 잘 갔다가 잘 와."










송실장은 한숨을 쉬며 나간다.

나중에 아이린이 돌아와서, 송실장이 시키는 대로, 나와 아이린은 퇴근했다.

우리는 아이린의 차에 탔는데, 아이린은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한다.
















[9]

아이린은 백화점으로 가서 나와 지혜가 입을 겨울 옷을 사자고 했다.










"내가 알기로는, 토론토 겨울도 추위가 슈퍼메가급이래."




"누나. 그러지 마. 가져가는 짐이 너무 많아져도 곤란해. 

꼭 필요한 것은 거기 가서 사도 되잖아."




"그래도 .."




"여기서 생각하고 미리 사가도, 거기서 필요한 것은 거기서 다시 사야해."

"살 때 사더라도. .."










내가 아무리 말려도 아이린은 막무가내이다. 그녀가 산 것은 파커나 패딩 등의 옷 뿐만 아니라, 겨울에 필요한 것들이라면서 핫팩, 스노우부츠, 내복, 목도리, 방울 달린 털모자, 장갑, 양말, .. 등등. 




이민가는 것처럼 완전 많이 샀다.













[10]

점심은 아이린이 백화점 푸드 코너에서 먹자고 했다. 우리는 일식집으로 가서 초밥을 먹는다.

식사 중에 지혜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빠. 한수정 언니 어떡해? ㅠ.ㅠ"

"너도 점심 시간?"




"응. 오빠도 밥 먹었어?"

"엄마랑 같이 백화점 초밥집."




"와아앙. 완전 맛있겠다.

이번에 나도 데리고 간다며?

완전 감동이야. 

오빠한테 완전 잘 할게."













외국에 데리고 간다고 하니까 좋아하는 것이 눈에 선하다.

분명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을텐데 ..

지혜가 의심스럽다.




쪼끄만게 말이야. ...










"지혜한테는 누나가 말했어요?"

"아까 카톡을 보냈지."




"부지런하다."




"지혜 아빠랑 전화도 했거든.

가기 전에 저녁 사준다고, 이따가 저녁 먹으러 오래"
















[11]

백화점에서 나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요새는 학교들이 방학을 앞두고 단축수업을 한다. 아이린은 지혜가 끝나는 시간에 맞춘다면서 그 길로 지혜의 학교로 갔다.




아이린이 지혜에게 전화를 하고, 나는 차의 트렁크에서 커다란 우산 두개를 꺼냈다. 하나는 내가 쓰고, 다른 한개는 손에 들고 쓰고 교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도 지혜에게 전화를 해서, 지혜가 조해수와 같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물 입구로 찾아갔다. 




내가 지혜에게 내미는 우산을 지혜는 해수에게 준다. 지혜는 내 우산으로 들어와서 나에게 팔짱을 낀다. 우리는 교문 밖으로 나온다. 지혜는 내 눈치를 보는지 아무 말이 없다. 그런데 지혜가 해수와 함께 뒷좌석으로 타려고 하다가 쇼핑백들을 보더니 입이 벌어진다.










"엄마! 이 많은 걸 다 어쩌라고?"

"입어."




"저걸 다 입으면 공처럼 굴러가겠다. 하하."




"누가 너보고 한꺼번에 다 입으래?

조심해. 오빠 지금 웃을 기분 아니거든?"




"아! 맞다. 쏘리. 오빠 죄송해요. 이제 안웃을게요."




"그런데 지혜 어떻게 하지? 

가더라도 어디 놀러도 못다니고, 병실에만 처박혀 있다 올 것 같은데."




"오빠. 아무리 내가 철이 없어도 그렇지.

한수정 언니가 저렇게 됐는데, 설마 내가 놀러 가자고야 하겠어?"




"와아아. 너 서지혜 맞니?"

"글쎄?"










우리는 쇼핑백들을 차의 트렁크에 실었다.




쪼끄만 것이 말하는 것이 달라진 것 같다.

지혜가 갑자기 착해진 것 같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12]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지혜는 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달라붙어서 토론토의 겨울에 대하여 검색하느라고 난리이다. 조해수는 지혜를 엄청 부러워하면서 쳐다보고 있다. 나중에는 경식이도 와서 같이 구경했다.




나와 아이린은 지혜와 나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아옹다옹 하면서.

한참 후에는 조해수의 엄마도 와서 아이린을 돕는다.













"이것도 넣어요."

"그건 안돼요."




"안돼도 넣으라니까."




"언니. 선생님 말이 맞아.

이런 것까지 뭐하러 가져가?

비싼 것도 아니니까, 거기 가서 사도 돼요."







"사러 갔는데, 마침 없으면? 안돼. 넣어."

"저 철고집."










지혜가 소리를 빽 지른다.










"아! 쪼오오옴!"

"뭐야? 왜 그러는데?"




"조용히 좀 해! 아까부터 둘이 왜 그렇게 계속 시끄러운데?"

"꼭 사랑싸움 하는 것 같아. 하하하."




"야! 조해수! 이건 뭔데? 왜 무식하게 웃고 난리인데?

지금 웃는 모드 아니거든."













그런데 지혜의 아버지 서전무가 아이린에게 전화해서, 우리보고 출발하라고 했다. 조해수는 자기 엄마랑 가고, 우리 넷은 아이린의 차에 타고 서전무에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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